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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도

장마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년 세차게 존재를 알리던 빗줄기가 올해는 소리 없이 지나갔다. 비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오던 것이 오지 않으니 섭섭함이 남았다. 싫어하는 것조차 기어이 마주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며칠 뒤, 비는 ‘야행성 폭우’라는 낯선 명칭을 달고 돌아왔다. 눈치도 보지 않고 땅을 두들기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피해들이 들려왔다. 어떤 것은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난이 된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무대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인물은 포조뿐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발을 떼지 못할 때, 포조는 과감히 경계를 넘었다가 시력을 잃은 채 돌아온다.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일은 고개만 까딱여서 될 일이 아니다. 몸통 전체를 돌려야 하는 물리적인 고통이 따른다. 시력을 잃거나, 혹은 곁을 내어준 누군가의 마음을 무너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행위는 돌아가는/떠나는 일보다 분명한 무게를 갖는다.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곁’이라는 공간을 점유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은 이모의 기일이었다. 그는 포조도, 야행성 폭우도 아니다. 돌아간 이에게는 돌아오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나는 내 마음의 폭을 한껏 넓혀, 그 안에 그를 머물게 한다. 그곳에는 갑작스러운 산사태도, 앞을 가로막는 어둠도 없다. 그저 부재를 응시하는 고요한 기다림이 있을 뿐이다.

글을 마치니 비가 그쳤다. 해가 잔뜩 내려앉아 걷기 힘들 정도로 덥다. 기분이 좋다기보다, 그저 이 열기가 선명할 뿐이다.

원래는 장마와 사랑에 대해 쓰려 했다. 그런데 문장들은 자꾸 이모에게로 미끄러졌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고도 그에 대해 길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게 사랑과 가장 가까운 단어는, 정의 내릴 수 없는 누군가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여름, 순남이 이모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