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석이 형의 문자를 받자마자 겉옷만 걸치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약국 안, 연두색 ATM 기기 앞에 섰다. 주머니 속 라임색 토스뱅크 카드를 꺼내 투입구에 꽂고, 기기가 우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동안 담담하게 기다렸다. 20,000루블을 출금하고 곧장 토스 앱을 켰다. 진짜다. 16만 원가량만 차감되었다.
“진원아, 지금 1루블이 8원이야. 빨리 돈 뽑아둬.”
그 말은 사실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17원이었던 루블이 반토막 났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발사했고, 루블은 바닥을 쳤다. 나는 뽑을 수 있을 때 뽑아두자는 생각으로 주말에 ATM 앞에 섰다. 손에 쥔 루블 지폐는 여느 때와 똑같이 생겼는데, 앱에 찍힌 숫자는 달랐다.
주말이 지나고 학교 가는 버스 창밖으로, 베떼베(ВТБ) 은행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물결치는 대열에서 사람들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달러가 바닥나기 전에 루블을 환전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제 나도 비슷한 이유로 움직였지만, 나는 약국 구석 ATM 앞에 혼자였고 저 사람들은 은행 앞에 함께였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과 같은 줄에 서지 않는 이방인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다른 줄을 섰다. 대형 마트 계산대 앞이었다. 쇼핑카트 안에는 신라면만 가득했다. 팔도 도시락이 장악하고 있는 라면 코너에서, 가장자리 한 칸을 차지하는 신라면을 나는 모조리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지나가던 직원에게 재고가 더 없는지 물었다. 직원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곤, 이내 박스를 가져와 벅벅 뜯어 라면을 내어줬다. 주변 사람들은 신기한 듯 구경했다. 당신들이 블린(Блины)을 먹듯이 나는 신라면을 먹을 뿐.
신라면은 한 봉지에 160루블이었다. 매대에 적힌 숫자는 변함없이 160이었지만, 환율이 반토막 난 지금 나에게 2,700원이던 라면은 1,280원이 되어 있었다. 숫자는 그대로인데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 전쟁이 가져온 기묘한 마술이었다.
라면이 가득 찬 봉지를 들고 기숙사 지하 주방으로 내려갔다. 넓은 주방에는 나 혼자였다. 유럽에서 온 유학생들은 이미 자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독일 친구 요슈아가 두고 간 냄비들을 한쪽으로 밀어 두고, 선반을 열어 신라면을 배터리 칸 채우듯 빼곡히 쌓아 올렸다. 질리지 않게 달걀을 넣어 먹기도, 국물을 졸여 비빔면처럼 먹기도 했다. 하루에 하나씩 꺼내 조리해 먹는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쌓아둔 라면이 반쯤 남았을 무렵, 러시아 정부가 달러 환전을 통제하고 루블을 예치할 시 15% 이자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국가가 돈줄을 쥐자 루블은 빠르게 가치를 회복했고, 25원을 돌파했다. 선반 위 신라면은 그대로였는데, 순식간에 4,000원짜리가 되었다.
치솟은 환율 탓에 한국 통장의 잔고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결국 나는 현지에서 루블을 벌어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식당 주방에서 뜨거운 인덕션 앞 프라이팬을 돌렸다. 주문이 밀려들면 머릿속도 그만큼 뜨거워졌다. 그러다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루블이 8원일 때 나는 라면을 싸게 산다고 기뻐했는데, 25원이 된 지금은 여기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딱히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뚝배기를 버너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을 뿐이었다.
옆에는 코스쨔가 있었다. 나처럼 급하게 들어와 설거지를 하는 친구였다. 그는 말없이 접시만 닦았다. 어느 날 직원 식사 시간에, 한식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에게 무심코 물었다.
“왜 여기서 일하고 있어?”
“집이 무너졌거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접경 지역에 살았는데 미사일에 집이 날아가 피난을 왔다고.
“피난? 근데 너 우크라이나 사람 아니야?”
“맞아. 근데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리 집을 부쉈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보이자, 자기 동네가 친러 성향이라 우크라이나 정부의 핍박을 받았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고, 코스쨔는 담담하게 밥을 먹었다. 창밖에는 시베리아의 겨울이 여전히 고요했다. 나는 잠시 후 코스쨔에게 물었다.
“너, 혹시 라면 좋아해?”
초고
용석이 형이 보낸 문자에 급하게 겉옷을 걸치고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운, 아직 운영하고 있는 약국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약국 안 왼쪽 구석에 있는 연두색 ATM 기기 앞에 섰다. ATM 기기에 쓰인 효성(HYOSUNG)은 볼 때마다 신기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신속하게 주머니 속 라임색 토스뱅크 카드를 꺼내 카드 투입구에 꽂았다. 카드가 들어간 기기가 우웅하는 소리를 내는 동안 나는 시험 삼아, 아니 어차피 생활비로 뽑아야 했기에 20,000루블을 출금했다. 그리고 곧장 토스 앱을 켰다. 진짜다. 진짜로 16만 원가량만 차감됐다. “진원아, 지금 루블/원 8이야. 빨리 돈 뽑아둬” 용석이 형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17이었던 루블/원이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싶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엊그제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러시아제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러시아의 루블도 바닥을 쳤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가만둘 수 없는 미국과 유럽은 곧장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고, 그 결과 루블의 가치는 폭락했다. 스위프트에서 배제된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래서 나는 바꿀 수 있을 때 바꾸자는 생각과 바닥 친 루블을 건져낸다는 생각으로 주말에 돈을 뽑았다. 그리고 그 주말이 지나고 학교 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창밖은 평소와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타는 버스는 항상 베떼베(ВТВ)라고 적힌 파란색 큰 건물을 지나쳤다. 베떼베는 러시아 대형은행 중 하나다. 평소 은행 앞 높게 걸린 러시아 국기만 펄럭이던 때와 다르게, 오늘은 은행 문 앞에 사람들로 줄이 길게 물결치고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은 불안함 때문인지 삐쭉 빼쭉 고개를 양옆으로 내밀었다. 하루빨리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루블을 달러로 바꾸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나도 그날 저녁 수업이 끝나고 줄을 섰다. 다만 아침에 은행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처럼 손에 카드나 통장을 들고 있는 게 아닌, 나는 대형 마트 안에서 쇼핑 카트의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카트 안은 한 가지 물품으로만 가득했다. 네모난 빨간 봉투에 검은색으로 글자가 쓰인 신라면이었다. 즉석식품 판매대에는 ‘도시락’이라고 하는 팔도 식품의 즉석 라면이 인기가 있는 만큼 갖가지 종류로 여러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인기가 없는 신라면은 판매대 가장 자리에서 한 칸만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적은 칸수만큼 러시아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신라면을 있는 대로 쇼핑 카트에 담고, 지나가던 마트 직원에게 혹시 신라면이 더 없는지 물었다. 직원은 이게 뭐라고 하는 듯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곤 조금만 기다리고 말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직원은 어딘가에서 신라면 한 박스를 가져와 뜯었다. 벅벅벅- 직원이 박스를 뜯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도 직원 앞에 서 있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신들이 블린(Блин)을 먹듯이 나는 신라면을 먹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빨리 사는 게 좋습니다’라는 생각이 그 사람들 시선보다 앞섰다. 신라면은 수입 품목이라 그런지, 러시아에서 한 봉지에 160루블이었다. 도시락이 한 봉지에 25루블인 것과 비교하면 라면 치고 비싼 가격이었다. 오늘도 신라면이 놓인 선반 아래에 적힌 숫자는 160으로 변한 게 없었지만, 루블/원이 절반으로 떨어진 지금 나에겐 2,700원이었던 라면이 1,280원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쇼핑카트를 신라면으로 잔뜩 채웠고, 루블을 라면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은행 앞 러시아 사람들처럼 줄을 섰다. 양손에 라면이 가득 담긴 봉투를 들고 기숙사로 들어왔다. 정면에 보이는 A동은 제쳐두고, 지하에 위치한 주방으로 곧장 내려갔다. 지하에는 외국 학생들을 위한 공용 주방이 있었다. 유럽에서 온 유학생이 많았던 만큼 주방 크기는 넓었지만, 전쟁 때문에 학생들이 귀국한 상태이기에 나 혼자만 쓰는 공간이 되었다. 긴급하게 돌아간 탓에 주방 한구석에는 아직 요슈아가 두고 간 몇 가지 주방용품이 있었다. 요슈아는 사용하고 싶으면 마음껏 사용하라는 듯이 말하긴 했지만 아마 쓸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 주방용품은 제쳐두고, 위쪽 유리문이 달린 선반을 열고 마트 이름이 크게 적힌 비닐봉지를 주방용품 옆에 올려두었다. 손을 뻗어 하나씩 선반 속 빨간색 신라면을 핸드폰 배터리 충전 상태처럼 높게 쌓았고, 어떠한 방법으로 라면을 다양하게 요리할지 기대하며 유리문을 닫았다.
달걀을 넣어 먹기도, 국물을 잔뜩 졸여 비빔면처럼 먹기도, 차가운 냉라면으로 먹기도 했다. 다양한 요리법으로 조리해 먹었지만 결국 평범하게 먹는 게 나에게 제일 잘 맞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하루에 하나씩 꺼내 평범하게 조리해 먹었다. 잔뜩 사다 놓았던 라면이 반 정도 남았을 때였다. 그때 러시아 검색 엔진 메인 탭에서 정부가 이제 달러 환전을 통제하겠다는 기사가 보였다. 이런 사태가 지속되는 걸 보고만 있을 리가 없는 러시아 정부의 조치였다. 달러 환전 통제와 더불어 루블을 은행에 예치해 두면 15% 이자를 주겠다는 특별 조치도 취했다. 그러한 러시아 정부의 조치가 효과가 있던 건지, 러시아를 향한 서방 제재가 큰 효과가 없던 건지 모르겠지만 루블은 금세 가치를 회복했고, 루블/원은 제자리였던 17을 넘어 25까지 올라갔다. 한순간에 내가 샀던 신라면은 1,280원이 아닌 4,000원이 되었다.
높게 오른 루블은 오랫동안 그 위치를 고수했다. 루블이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는 만큼 한국 통장 속 모아둔 돈이 떨어지는 속도는 빨라졌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러시아에서 루블을 직접 만들어 내야 했고, 한국어 과외, 한식당 아르바이트 등 현지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어느 지난날 아침에는 루블/원이 8이 되어 기뻐하며 라면을 한 박스 넘게 사고, 남은 돈으로 월세를 내며 기뻐했지만, 루블/원이 25가 됐을 때는 현지 한식당 주방 속 뜨거운 인덕션 앞에서 프라이팬을 돌리고 있었다. 주문이 많아질수록 머릿속도 인덕션만큼 열을 냈고, 미사일을 발사한 블라디미르 푸틴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탁! 버너 위에 올려있던 뚝배기를 받침대에 옮기는 소리가 크게 났다.
대형 인덕션 옆 작은 방에는 며칠 전 나처럼 급하게 설거지 업무로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코스쨔였다. 한식당 주방장은 러시아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이었다. 코스쨔 또한 한국어를 할 줄 몰랐고, 둘 사이 의사소통이 불가해 코스쨔는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직원 식사 시간에 보면, 코스쨔는 그리 한식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밥을 먹는 와중에 코스쨔에게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코스쨔는 집이 무너졌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미사일로 인해 집이 무너졌고, 그로 인해 러시아로 피난을 왔다고 했다. “피난? 근데 너 우크라이나 사람 아니야?”라고 물었다. 코스쨔는 “맞아, 전쟁 전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리 집을 부쉈어”라고 대답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니, 코스쨔는 자신이 살던 동네는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고 그만큼 우크라이나 정부의 핍박이 있었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조용히 숟가락을 다시 움직이다가, 쥐고 있던 숟가락을 잠깐 내려놓고 코스쨔에게 혹시 라면 좋아하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