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밥을 먹고, 실내 자전거를 수행하고,
지난주 동안 현관에 쌓인 택배를 다 까고 나서,
쓴 글.
요즘 소비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생겼다. “내 다음 사람(자식이나 조카 등)이 쓸만한가? 물려줘도 괜찮은가?” 그러다 보니 오롯한 나의 취향이거나, 시대적으로 구매해 볼만한 것을 산다 (시대적이라는 대단한 단어를 쓴 거 같은데 ‘요즘’ 내 취향이라는 말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헤리티지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고 차라리 빈티지가 낫다. 헤리티지는 언제부턴가 ~~거대한 산업 일부가 된 거 같다. 예를 들어 기막히게 발견한 LP, 내 취향에 가까운 도서, 누가 아껴 쓰다 시장에 나온 잔 등. 이번 달엔 특이하게 옷을 하나 샀다. 결제는 지난달에 했다. 해외 배송이라 늦게 받았을 뿐.
잠깐, 옷 얘기를 해보자. 나는 요새 일주일 내내 거의 같은 옷을 입는다. 거의라고 한 이유는 이너 제품은 매일 갈아입는다. 교복처럼 회사에서 입을 유니폼, 주말을 위한 살짝 더 편한 차림. 사실 두 옷의 경계는 그리 크지 않다. 직장 유니폼이라 했지만 세미 정장도 아니고 캐주얼한 차림이다. 검은 패딩, 검은 캐시미어 니트, 통이 좁지 않은 검은 바지, 검은 신발. 그렇지만 이너로 입는 반팔티는 가끔 노란색, 또 가끔은 민트색. 일종의 나만 아는 재미.
아, 재미라는 단어를 보니 생각났다. 20대에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다 매번 듣는 말이 있었다. “인생 진짜 재미없네. 왜 이리 재미없게 사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선배를 만나면 그런 소리를 들었다. 담배는커녕, 술 잘 안 마시고 일 년에 한 서너 번 먹나. 지금은 맥주 한 잔이면 확실하게 취한다. 먹을 필요도 잘 모르겠고. 다시 돌아와서.
아무튼 이제는 그 안 쓴 돈으로 저 목적을 갖고 꽤 소비를 하고 있다. LP, 책, 빈티지 잔 등. 노란색 반팔처럼 나만 아는 재미다. 서점이나 구경하러 가고, 새로 나온 책 보며 ‘이게 왜 인기지’ 궁금해하고, 질투? 질투하는 건진 모르겠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도서관까지 산책하고.
산책!하니 이번 여행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친구가 한 말이다. 부산에 친구 둘이랑 갔다. 내가 아침 먹고, 카페 갔다, 저녁 먹고 사우나하고 집에 가서 잔다고 하니, “어떤 새끼가 여행하러 와서 저녁 먹고 일찍 자자고 하냐” 여행 별거 있나? 여행 얘기해 볼까.
일주일간 도쿄를 다녀왔다. 작년에. 가마쿠라와 오이소 그리고 도쿄에 있다가 왔다. 가마쿠라 여행기는 나중에 길게 쓸 예정이니 자세한 설명은 줄이고.
카즈(KAZ)라는 친구 집에서 머물렀다 (이제는 친구라고 할만한 듯). 카즈랑 이런저런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내가 본 여행객 중에 너가 제일 일찍 일어났다” 라고 말했다. 나흘간 가마쿠라 조묘지에 있는 카즈 집에서 어떻게 지냈냐 하면, 다섯 시에 대충 씻고 산책을 나선다. 30분 정도 걸으면 가마쿠라 역 앞 아사고한이라는 아침 밥집이 나온다. 거기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랑 밥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주변을 돈다. 그리고 굿구디스라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하고, 구경하려던 사찰이나 바다 갔다가 돌아와서 점심 먹고, 숙소 앞 카메야에서 또 한 잔하고(커피), 숙소 들어가서 쉬다 시간 되면 세이카이하에서 저녁 먹고, 들어와서 사우나 하고. 잤다. 이 똑같은 생활을 나흘간 반복했다. 여행이 뭐 특별해야 하나. 여행도 하나의 일상이라 믿는다.
물론 그때 본 아침 햇살은 기분이 참 좋았다. 근데 오늘 아침 출근 전 맞이한 아침 햇살도 기분이 좋았다. 나만 아는 재미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부디, 저 멀리 상단에 있는 Verses GT라는 앨범을 들어보길. 그건 당신도 알았으면 하는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