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이고 감정이 풍부하고
그릇이 크고 눈매가 시원시원하고
말을 배려있게 하고 포용력이 있는,
정말로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빛나는 사람으로 자랄 것인가”
-우치다 다쓰루
「목표는 천하무적」, 128쪽


더운 날씨에 얇고 하얀 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리고 식당에 앉아 음식을 먹기 전,
사장님께 앞치마를 부탁했다.
흘릴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를 자국에 대비하기 위해.
앞치마를 벗었는데
땀에 젖은 얼룩이 셔츠에 남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표를 예매하고,
시간에 맞춰 나가려할 때
나는 영화를 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늦지 않고 싶은 걸까


정수기 레버가 세게 눌려서 물이 자꾸 넘쳐흘러
그래서 내가 연구해서 테이핑 해놓은 거야
너무 세게 눌리지 않고 적당하게 눌려서
물이 물컵을 넘치지 않게
그러자 물컵을 가득 채운 손님이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럼 A/S 맡기세요
그리고 다시 주인아주머니가
물이 넘치면 물받이를 갈아줘야 해
정수기 자체에 물 빠지는 길이 없어서
그래서 내가 직접 손 봤어
그러자 아까 그 손님이 또다시
그럼 A/S 맡기세요
이 콩국수를 맛보고도 그런 대답이 나올까
이 콩국수는 감점 하나 없는
A/S가 필요 없는 완벽한
콩국수인데도 말이다
잘하셨네요라는 말을 말아 드셨나


더운 날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온다 더 자주
버스 문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놔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스컬레이터 고장 안 나게 관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스 커피 감사합니다
제빙기 발명에 감사합니다
캡모자 이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중 가장 감사한 건 냉면 창시자
샤랴웃 투 필동면옥 동아냉면 을밀대 서령 우래옥
아 그리고 정혜 씨 모밀과 비빔국수도


비가 올 줄 몰랐다.
일기 예보를 보고도 비가 오지 않길 바랐다.
그 바람에 우산을 갖고 오지 않았고,
역시나 머리는 흠뻑 젖었다.
나쁜 예감은 밝은 희망보다 정확도가 높다.
일기 예보보다도 높다.
때문에 머리 말고 눈썹이 흠뻑 젖었다.
불행이, 아니 비가 오면 뭐를 해야할까.
비가 오는 흐린 날을 30년 넘게 맞이해도
정확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우산을 들고 나가서라도 밖을 걸어야 할지
아니면 집 안에 앉아 가만히 있을지.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건
날이 곧 갠다는 사실이다. 우우우. 하하하.


손톱의 인생.
손톱에도 인생이 담긴다.


잡초의 풀잎 수를 세고 있다
땅과 자신 몸의 일부인 줄기를 뚫고
올라온 힘을 보고 있다
줄기의 크기가 다양한만큼
갖가지의 힘이 있었고
그 힘의 방향도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태양을 향해 뻗어있지만
각도는 제각각이고
어느 한 풀잎은 이미 힘이 다한 것처럼
낮은 각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언어는 단순히 약속 같은 거고
대화는 마음을 나누기 위한 수단일 뿐


본은 시간이 갖는 의미를 잊어버렸다
여섯 시 십 분이 갖는 의미를 잊었다, 퇴근 시간


일상을 주물럭해서 이상으로


술이 들어가면 사랑이 넘치는 부주의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