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살던 시절. 아침에 눈을 뜨고,혼자서 지독하게 지키던 의례가 있었다. 경건하게 한국어책을 두 손으로 들고, 정직하게 소리 내 읽는 것. 한국어로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 한국어를 까먹겠구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낭독하다보니 잡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주 가는 바이칼호수 같은 마음이 됐다랄까. 한국 생활이 길어지자, 아침에 소리 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국어를 쓰는 환경이라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편안함을 이루는 요소 중 모국어의 비중은 크지 않나 보다. 그럼 무엇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아침에 읽을 책으로 마종기 작가의 시집을 골랐다.
내가 난 해는 1939년이지만
그보다 7, 8년 전 내가 살던 곳에는
귀 아무리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가는 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창문이었겠지.
보랏빛 꽃이 안개같이 많이 보이고
빗속에서 그 꽃이 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튼튼한 사내가 되고 싶었다.
-마종기, 「꽃의 이유 2」

몇 번을 소리 내 읽다 보니 외우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선생님이 어떤 시를 외워 읊은 적이 있다. 누구의 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 요즘은 시를 외워 읊는 사람이 없겠지? 지피티가 시도 만들어 주려나.